‘호남=민주당’이라는 공식은 오랜 세월 한국 정치의 깨지지 않는 신화이자, 견고한 성벽이었다. 민주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땅에서 경쟁은 실종되었고, 정치는 유권자가 아닌 공천권자를 향했다. 그러나 2024년 4월, 인구 4만 남짓한 작은 고을 담양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균열이 시작됐다. 그 균열을 만들어 낸 이름은 신생 정당, 조국혁신당이었다.

혁신당 1호 단체장의 탄생은 단순한 1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민주당의 일당 독주에 대한 유권자의 경고장이자, 호남 정치의 새로운 지형을 예고하는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경쟁’이라는 민주주의의 심장이, 조국혁신당의 등장으로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 극적인 승리의 뒤에는, 정당의 후광 없이도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해 온 정철원이라는 준비된 인물이 있었다. 그의 끈질긴 지역 밀착 행보는 유권자들에게 ‘정당이 아닌 사람’을 보게 했고, 혁신당은 바로 그 지점에서 민주당의 아성을 허물 기회를 포착했다. 이는 혁신당의 전략이 ‘반(反)민주당’이라는 구호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신뢰를 얻은 인물을 통해 대안 세력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해내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담양의 승리가 혁신당의 탄탄대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반(反)민주당’이라는 구호의 유효기간은 길지 않다. 유권자들은 이제 혁신당이 민주당의 대안으로서 지역 발전을 위해 어떤 구체적인 청사진과 정책적 역량을 보여줄 것인지 날카롭게 지켜볼 것이다. 일회성 돌풍을 넘어 지속 가능한 정치 세력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호남의 숙원 과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촉발한 경쟁 구도는 무엇보다 광주·전남 시민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다. 그동안 선택지가 없는 정치 시장의 수동적 소비자에 머물렀던 유권자들은, 이제 민주당과 혁신당, 나아가 지역 맞춤형 인물을 찾는 국민의힘까지 저울질하며 더 나은 후보를 꼼꼼히 옥석을 가릴 권리를 되찾았다. 지역 현안은 더욱 세밀하게 다뤄질 것이며, 후보들은 유권자의 한 표를 얻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절박함으로 더 나은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정치의 주도권이 비로소 시민의 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낡은 공식에 대한 사망 선고를 의미한다. 담양의 사례는 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것이 정치 생명의 끝이 아니며, 실력 있는 인물이 새로운 정당의 깃발 아래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는 혁신당이 앞으로 민주당의 공천 시스템을 더욱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바꾸도록 압박하는 강력한 외부 변수로 작용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제 분명한 것은, 조국혁신당의 등장이 호남 정치 지형을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강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담양에서 시작된 작은 파동은 이제 호남이라는 거대한 호수 전체를 흔드는 물결이 되고 있다. 독점이 낳은 타성과 오만을 경계하고, 오직 실력과 비전으로 평가받는 정치. 유권자의 높아진 눈과 현명한 선택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가장 위대한 명제가,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통해 다시 호남 땅에서 뜨겁게 증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