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국립정원문화원 한옥정원

전남 담양군 금성면 하성길에 국내 첫 정원 전문 국립기관인 ‘국립정원문화원’이 지난 9월 18일, 산림청과 전라남도, 담양군,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을 열었다. 축구장 10배가 넘는 7만㎡ 부지에 생활·문화·연구·산업을 아우르는 정원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면서,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을 넘어 대한민국 정원문화의 심장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 사업의 출발점은 2020년 12월 전라남도가 ‘국립 한국정원문화원’ 국가사업 선정을 이끌어낸 데 있다. 이후 2021년 산림청·전남도·담양군·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이 정원문화 확산과 미래 인력 양성, K-가든 세계화를 목표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조성 사업이 본격화됐다. 총 196억 원(국비 136억, 지방비 60억)이 투입됐고, 2024년 말 준공, 2025년 5월 임시 개방을 거쳐 9월 공식 개원에 이르기까지 약 4년의 준비 기간이 소요됐다. 지방정부의 기획과 중앙정부의 예산, 공공기관의 운영 역량이 결합된 ‘정원 국가 인프라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국립정원문화원은 단순한 관람형 정원이 아니라 연구·교육·체험·관광을 결합한 복합 플랫폼이다. 공간은 생활정원, 문화정원, K-가든, 소재정원 등 4개 정원지구와 15개 주제 정원으로 구성된다. 생활정원지구에는 베란다정원과 텃밭정원, 수생식물정원, 약초정원 등이 조성돼 있다. 아파트 베란다나 마을 앞마당에 그대로 옮겨 올 수 있을 법한 소규모 정원 모델을 실제 공간으로 구현해 시민·농업인 교육에 활용하고, ‘생활 속 정원’을 확산시키는 교본 역할을 한다.

K-가든지구는 한국 전통정원의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면 솔향정원과 한옥정원이 이어지고, 낮은 담장과 마당, 연못과 화단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소쇄원과 명옥헌 같은 남도 별서정원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관방제림과 죽녹원, 메타세쿼이아길 등 인근 숲길과 함께 이어서 보면, 담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열린 정원 박물관’처럼 읽히는 구조다. 정원문화원이 기존 명소들 사이를 잇는 새로운 축으로 등장한 셈이다.

소재정원지구는 정원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실험장이다. 습지정원과 드라이정원, 잎의정원, 신품종정원 등이 조성돼 다양한 식물 소재와 식재 기법을 시험한다. 비비추와 각종 수생식물, 내건성 초화류 등 기후 변화와 환경 스트레스에 강한 식물을 한자리에서 보여주고, 국내 품평회 수상 품종과 새로 개발된 관상식물을 함께 전시해 육종·유통·조경 업계가 한눈에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축제정원과 실습정원으로 구성된 문화정원지구에서는 정원 경연과 시민 참여 정원 만들기, 각종 체험 프로그램이 열려 현장이 살아 있는 실습 교육장으로 기능한다.

실내 공간의 중심은 방문자센터다. 1층에는 사계절 내내 초록을 즐길 수 있는 실내정원과 강의실, 정원도서관, 카페와 가든숍, 푸드코트가 자리한다. 특히 통유리 너머로 야외 정원과 주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정원도서관은 ‘정원 속 서재’라는 평가를 받는다. 책을 읽다가도 자연스럽게 바깥 풍경으로 시선이 옮겨지는 구조로 설계돼, 실내와 야외 정원 사이 경계를 최소화했다. 담양 대나무를 모티브로 한 굿즈와 지역 농산물 가공품을 판매하는 가든숍은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의 새로운 판로이기도 하다.

갤러리온실은 국립정원문화원의 얼굴이다. ‘향기의 서사’를 주제로 청춘의 향기, 사랑의 향기, 대지의 향기, 지성의 향기 등 향과 색, 소리를 결합한 전시 정원이 이어진다. 계절에 따라 전시 구성이 바뀌도록 설계돼 향후 기획전, 예술 전시, 퍼포먼스가 열린다면 정원과 예술이 교차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구조다. 한옥 쉼터 ‘수풀재’ 일원에서는 다도 체험과 인문학 강연, 소규모 전시 등이 열리며, 담양이 오랜 시간 쌓아온 인문·정원 자산을 자연스럽게 현재의 프로그램과 연결한다.

야외 정원은 치유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다. 수생식물정원은 넓은 연못과 수련, 각종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한여름에도 시원한 풍경을 만든다. 솔향정원은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피톤치드를 즐길 수 있는 산책 공간으로,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습지정원과 잔디마당으로 이어지는 동선은 유모차와 휠체어가 다니기 쉬운 완만한 경사로 설계해 전 세대가 함께 걷는 ‘배리어 프리 정원’을 지향했다.

세부 정원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정원문화원이 지향하는 ‘생활 속 정원’의 방향이 더욱 분명해진다. 입구정원은 계절별 초화와 관목을 배치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화단 구성을 보여준다. 텃밭정원에는 상추와 허브, 토마토 같은 식용식물이 어우러져 집 앞 텃밭의 모델을 제시한다. 잎의정원은 꽃보다 잎의 색과 질감에 주목해 다양한 녹색과 무늬만으로도 풍성한 정원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신품종정원은 국내에서 새로 개발된 초화와 관목이 실제로 식재돼 있어 정원사와 농업인, 조경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방문자센터 안 카페와 가든숍 역시 담양만의 색을 입혔다. 대나무 잎을 활용한 ‘댓잎 아이스크림’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음료·디저트는 담양 농가가 생산한 재료로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가든숍에서는 국립정원문화원 캐릭터와 로고를 적용한 엽서, 머그컵, 에코백 등 기념품과 함께 로컬 농산물 가공품, 꽃꽂이 소품, 소형 화분과 원예 도구를 판매한다. 정원을 매개로 한 로컬 굿즈와 관광 소비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정원이 지역 경제와도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정원문화원이 내세운 핵심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요 맞춤형 정원 인재 양성이다. 정원 시공·관리 실무자를 위한 전문 교육과정부터 마을 정원사를 꿈꾸는 시민 대상 기초 교육까지 단계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정원 관련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둘째는 대국민 정원문화 서비스 강화다. 사계절 상설 프로그램과 가족·청년·어르신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정원을 ‘특별한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 문화로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셋째는 K-가든의 글로벌 선도다. 국제 정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해외 박람회와 교류를 확대해 한국 정원의 미학과 기술을 세계 시장에 소개하는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비전이다.

교육·체험 프로그램은 온라인 예약 시스템을 통해 상시 모집된다. 인문학자가 정원과 문학, 철학을 주제로 강연하는 ‘정원덕후 인문편’, 시인과 작가가 참여해 정원을 배경으로 낭독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나의 작은 정원, 테라리움 만들기’ 같은 실습형 과정에서는 유리 용기 속에 미니 정원을 꾸미며 기초 원예기술을 익힌다. 어린이·청소년 대상 교육은 놀이와 체험 요소를 강화해 미래 세대가 정원을 친숙한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이도록 돕고 있다. 임시 개방 기간에 운영된 대나무 물총 만들기, 대나무 화분 만들기 등 무료 체험도 큰 호응을 얻었다.

관람 여건도 주민 친화적으로 조성됐다. 국립정원문화원은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별도 안내가 있기 전까지 무료 관람을 실시하고 있다. 하절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5시까지 문을 열며, 매주 월요일과 설·추석 당일에는 휴관한다. 넓은 주차장과 완만한 보행 동선, 실내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고령층과 영·유아 동반 가족도 비교적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립정원문화원이 담양에 들어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담양은 소쇄원과 명옥헌원림, 식영정, 죽녹원,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정원과 숲길을 품은 고장이다. 군은 2016년 ‘인문학교육·전통정원 특구’로 지정된 뒤 특구 운영 실적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특구에 선정됐고, 올해 다시 2028년까지 연장을 이끌어냈다. 누정 문화와 별서정원, 죽녹원 일대 숲길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온 담양의 오랜 시도가 국립정원문화원 유치와 개원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담양군이 추진하는 ‘정원문화도시’ 전략 속에서 국립정원문화원은 핵심 축이다. 군은 소쇄원·죽녹원·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길·읍내 원도심을 잇는 관광 동선 한가운데에 정원문화원을 배치해, 전통정원과 현대정원, 숲과 마을, 강변과 골목길을 한 번에 엮는 정원 도시 모델을 그린다. 정원을 매개로 한 인문학 강좌와 축제, 2027 남도정원 비엔날레 등의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갖춰지면 담양의 도시 브랜드는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전남도 차원에서도 국립정원문화원을 축으로 순천 국가정원, 구례 지리산정원, 시·군별 지방정원과 민간정원을 잇는 정원 네트워크 구상이 진행되고 있다. 정원이 단순한 조경을 넘어 교육·치유·관광·산업을 아우르는 인프라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수록, 국립정원문화원 위상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원문화원을 중심으로 한 정책과 연구, 현장 네트워크가 촘촘해질수록 주민과 관광객이 체감하는 변화도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원산업 진흥이라는 관점에서의 기대도 크다. 정원 자재와 식물, 조경 설계와 시공, 정원 관리 서비스, 교육 콘텐츠와 관광 상품까지 연계 산업이 폭넓게 파생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국립정원문화원이 신품종 정원식물의 테스트베드이자 정원 자격제·표준화의 컨트롤타워, 국내외 전문가 네트워크의 허브로 기능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담양을 넘어 전남과 대한민국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개원 초기의 관심이 일회성 붐으로 그치지 않도록, 계절마다 주제와 식재, 프로그램을 바꾸는 기획 역량이 중요하다. 주민이 직접 정원 조성·관리와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를 강화하지 못하면, ‘관광지형 시설’에 머물 위험도 존재한다. 대규모 관광객 유입에 따른 교통·소음·쓰레기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 원칙을 세우는 것도 숙제다. 화려한 꽃과 사진 명소를 넘어, 기후위기 시대 생태 전환과 지역소멸 대응, 돌봄과 교육을 고민하는 ‘미래 전략 정원’으로 자리 잡을 때 국립정원문화원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담양국립정원문화원 갤러리온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