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이강산 남한대토벌작전 전개도 국사편찬위원회

-호남 들녘에서 태어난 평민, 의병의 길을 택하다
1909년 여름, 함평 대야 들녘을 스치는 바람은 이미 나라 잃은 백성의 불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논두렁 사이를 오가며 장사와 농사로 가족을 먹여 살리던 한 평민 청년의 가슴에도 그 바람은 깊이 스며들었다. 함평 대야면, 지금의 월야면에서 태어난 이강산은 본관 함평, 자 인국, 호 돈익으로 불렸지만, 동네 사람들에게는 그저 성실한 농민이자 장돌뱅이 상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을사늑약 이후 군대 해산과 강제 통치가 거세질수록, 그는 밭고랑보다 더 깊은 상처가 민초들의 마음에 나고 있음을 똑똑히 보았다. 전남 서부 일대는 일찍부터 의병의 고장이었다. 고창과 영광, 함평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맞선 김태원 의병부대가 들녘과 산자락을 누볐고, 기삼연과 심남일, 전해산으로 이어지는 호남 의병의 물줄기는 밤마다 농가의 등잔 불빛과 함께 커져갔다. 일제는 그들을 ‘폭도’라 부르며 헌병과 경찰, 밀정을 총동원해 토벌에 나섰지만, 호남 들판에서는 오히려 의병의 수가 늘어났다. 이강산은 1906년 무렵부터 김태원의 의진에 몸을 얹으며, 농민과 상인도 총과 칼을 들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기 시작한다.
그는 말이 적고 행동이 먼저인 성품으로 알려져 있었고, 험한 지형을 꿰뚫는 감각 덕분에 의진의 유격전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되었다. 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뒤, 일본군의 토벌은 더욱 거세졌고 의병은 더 깊은 산과 골짜기로 스며들었다. 그 와중에 김태원이 전투 끝에 순국하자, 이강산은 잠시 심남일 의진에 몸을 의탁한 뒤 마침내 결심한다. 더는 남의 부대원이 아니라, 스스로 고향 함평을 지키는 평민 의병장으로 나서겠다는 결의였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내정리 산중 주막, 밀정을 겨냥한 결판의 밤
이강산이 의병장으로 떠오른 무대는 불갑산과 석문산을 잇는 산줄기였다. 1909년 7월 하순, 그는 함평 대야면 복룡리에서 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양창국 등과 의병진을 새로 꾸렸다. 김태원과 심남일 의진에서 익힌 전술을 바탕으로, 함평과 영광, 나주를 오가며 일본군 보급로를 기습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전투가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가장 먼저 겨눈 대상은 같은 조선인 밀정들이었다. 나주 헌병분견소 구밀파견소에 소속된 이판안·김정태·최치도·박복남은 일본 경찰과 군에 정보를 넘기며 의병의 거점과 명단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8월 29일, 월야면 내정리 산중 임시진지에 머물던 이강산은 이 네 사람이 이양삼이 운영하는 주막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동지들을 모아 작전 회의를 열고, ‘이번에 밀정을 정리하지 못하면 부대는 한 걸음도 앞으로 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즉각 거사를 준비한다. 박치일·정인술·박장봉·서성학·지갑진·장한순 등은 산을 내려가 이양삼을 설득해 주막 안으로 진입할 틈을 만들고, 먼저 내려가 있던 양창국과 박병수까지 가세해 일제히 공격을 감행한다. 좁은 주막 안에서 벌어진 난투 끝에 이판안·김정태·최치도는 현장에서 처단되고, 박복남은 인근 산중으로 끌려가 심문을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 작전은 의병 진영의 숨통을 잠시 틔워 주었지만, 곧바로 더 집요한 추격을 불러왔다. 일본군은 남한폭도대토벌작전을 시작하며 호남 일대를 뒤흔들었고, 내정리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이강산은 10월 9일 결국 체포된다. 그해 12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는 그에게 폭동 및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선고했고, 이강산은 항소와 상고를 거듭해 법정에서까지 항일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허나 1910년 3월 대구공소원, 4월 고등법원에서 연달아 기각 판결이 내려지면서, 그의 생은 대구감옥 교수대에서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함평천지에 되살아난 이름, 오늘의 이강산
1910년 6월 2일, 대구감옥의 차가운 교수대 아래에서 이강산의 숨은 멈추었다. 판결문에는 폭동과 살인의 죄목이 적혔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끝내 ‘나라를 되찾지 못했다’는 자책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역사는 이 사내를 다르게 불러 세웠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해 국가가 공인한 독립운동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독립기념관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과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지역N문화의 ‘의병 밀정 처단에 앞장선 이강산’ 같은 자료들은, 그가 김태원·심남일 의진에서 시작해 함평·영광·나주 일대를 누비며 밀정을 겨냥한 투쟁을 이끌었던 사실을 복원하고 있다. 호남 의병이 교전 횟수와 희생자 수에서 전국 최고를 기록한 치열한 전선 한가운데, 함평 출신 평민 의병장이 있었다는 뜻이다.
최근 이 이름은 다시 지역의 입과 입을 타고 전해지고 있다. 2013년 목포보훈지청과 지역 언론은 ‘우리고장 애국지사’ 기획을 통해 이강산의 공적을 소개했고, 2023년 함평백인회 준비위원회 발족식과 함께 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에서 추모 기념식이 열렸다. 후손은 ‘강산 의병장이 작은할아버지’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지역의 정기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함평 곳곳에 남은 들녘과 산자락, 그리고 디지털 기록 속에서 다시 소환되는 이름 이강산은 우리에게 묻는다. 나라를 판 밀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평범한 이웃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오늘 함평을 걷는 이들이 그 질문을 마음 한켠에 품는 순간, 100여 년 전 들녘에서 시작된 의병장의 결의는 현재형으로 이어진다. 지역 신문들은 심남일·이강산·모천년·박영근을 함평을 대표하는 의병장으로 자주 호명하며, 이름이 잊히지 않도록 반복해서 지면에 올리고 있다. 그의 이름은 오늘의 함평을 비추는 거울이자 이정표다.